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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이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백수 라이프 시절이 벌써 까마득하다. 이 백수 시절엔 거의 고양이 집사로만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다시 되돌아보니 뽈뽈거리며 잘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꽤나 재미있었던 곳이 바로 국립기상박물관.

 

정말 전전생쯤의 일인 것만 같은 초등학생 시절, 우리 학교 운동장 한켠엔 저학년들은 도무지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 상자가 있었다. 그냥 박스도 아니고 스트라이프 무늬처럼 가로로 구멍이 뚫려 있었지만 정작 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던 그 상자. 초등학교 4학년이 넘어서야 배워서 알게 된 그 상자의 정체는 기상대. 실제로 그 문을 열어서 기상 관측 실습을 한 기억은 없지만 그래도 어쨌든 기상대를 실물로 본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긴 했다. 지금까지도 기억을 하는 걸 보면.

 

여하튼 늘 호시탐탐 어디 또 갈 데 없나하며 온갖 서치를 하던 중 얼마전에 국립기상박물관이 새로 개관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 아직 기상과 관련된 국립박물관이 없었다고? 기상청에서 뭔가 하나는 운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의아함도 의아함이지만 새 박물관에 대한 호기심과 어렸을 적 이 흰색 박스가 기상대임을 처음 알았을 때의 유레카적 감각이 올라와 당장에 가 보기로 결정했다.

 

국립기상박물관은 생각보다 더 서울의 중심가에 있었다. 뭔가 어디 빈 땅에-서울에 빈 땅이 어디있겠냐만은- 거대하게 새로 지은 박물관인가도 싶었었는데, 서울 돈의문박물관마을 위쪽 그러니까 강북삼성병원 위쪽에 위치하고 있었다. 운전면허증은 신분증으로만 사용하는 뚜벅이에게는 접근성이 참 좋다.

라고 생각했지만! 지하철 타고 갈 수 있다는 것만 좋았다. 내려보니 박물관 도착할 때까지 계속해서 오르막길이었다. 잘 닦여진 인도인데 숨가쁨의 정도는 등산 수준. 등산 쪼랩이는 잘 닦여진 길이어도 경사길이면 최소 2번은 쉬었다 올라가야겠구만.

첫 번째 휴식 때까지는 의욕이 있는데 두 번째 휴식 때는 늘 내가 뭐할라고 여기까지 와서 이 난리인가하고 후회를 하지만 이미 이 시점에서 돌아가기에는 늦었고 지금까지 올라온 게 아까워 끝까지 올라가고 마는 이상한 매커니즘이 형성된 지 오래다.

국립기상박물관이 위치한 곳은 점점 경사가 높아지는 장소에 있어서 나같은 등린이는 정말 걸으면 걸을수록 당황스러웠는데 그래도 나만의 등산 매커니즘에 의거하여 두 번 쉬고 국립기상박물관 도착 성공!

 

그렇게 등산하듯이 올라 도착한 곳에는 요즘 만들어지는 박물관들과는 사뭇 느낌이 다른 건물이 하나 앉아 있었다. 딱 봐도 근대건축물을 정비해서 박물관으로 꾸몄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비주얼의 흰색 건물.

최초의 인터넷 검색 때부터 예약을 하라길래 했더니 예약 시간이 아슬아슬해 바깥 풍경은 나중에 돌아가면서 즐기기로 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시간을 딱 맞추는 게 어려워진다. 다른 능력에 비해 공간지각력과 거리감각이 부족한지라 시간을 딱 맞춰 계산하면 이렇게 아슬아슬하고 5분 정도 먼저 여유있게 도착하는 걸로 계산하면 왜인지 20분쯤 앞서 와버리게 되었다. 그럴바에야 차라리 20분 먼저 도착하는 쪽이 나은데, 이 날은 하필 아슬아슬하게 도착해버렸다. 숨 돌릴 틈이 없다.

 

그런데 예약을 하지 않아도 관람은 가능한가 보다. 나는 무조건 예약을 해야하는 줄 알았는데, 그냥 관람하러 들어가는 관람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예약을 한 바람에(?) 큐레이터님의 30분 안내 및 설명을 듣게 되었다, 1:1. 하하-

보통은 자녀를 데려오는 가족 관람객이 많을텐데, 나같이 다 큰 성인-심지어 다 큰지도 오래 되어 어떻게 봐도 큐레이터님이 나보다 한~~참 어린데-1:1로 설명을 해야하다니, 큐레이터님의 오늘 시프트 운이 없으시다.

나도 좀 멋쩍고 어색하지만 이왕지사 예약도 했겠다, 기상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이 어차피 많으니 설명 듣는 것도 괜찮겠다 싶었다. 초반 10여분 간은 큐레이터님의 당황스러움이 가시지 않았는지 말씀을 유려하게는 못 하셨지만 내가 저 심정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또 혼자 와서 혼자 설명을 듣다니 얼마나 부담스럽겠나 싶어서 모른척했다. 그래도 전달해야 할 얘기는 다 전달해줬고.

 

관람은 1층 전시실에서 2, 그리고 다시 1층으로 내려오는 동선이었다.

 

1층은 우리나라 기상관측의 역사를 중점으로 해서 2개의 공간이 이어졌는데, 첫 번쨰 전시실에서는 측우기 이전에 어떻게 강수량을 측정했는지 설명되어 있는 패널과 삼국사기 등 옛 역사서에 기록된 기상 관련 기사들이 눈에 띄었다. 그러고보니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네, 측우기 이전에도 농사는 지었을텐데 이 시절에는 강수량을 어떻게 측정했는지. 측우기의 위대함이나 가치에 대해서만 너무 강조하여 배워와서 일련의 흐름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다. 역사를 공부하다보면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어떤 한 이물이나 한 사건, 한 가지 사물이 너무 획기적인 나머지 그 이전과 그 이후의 흐름은 연결하지 못할 때가.

여튼 측우기 이전에 어떻게 강수량을 측정했냐를 보여주는 패널에는 땅에 곡괭이인지 호미인지가 떡하니 꽂혀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비가 온 뒤에 삽을 땅에 꽂아봐서 얼만큼 들어가는지를 가지고 강수량을 가늠했다는 것이다. , 그랬겠다. 이게 제일 직관적이었겠어.

당연히 측우기만큼 과학적이고 정확하지야 않았겠지만 직접 땅을 파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 이보다 간편하고 경험적인 방법이 또 있었을까.

 

그리고 다음 전시실에는 국립기상박물관이 자랑하는 메인 문화유산인 공주감영 측우기 진품이 전시실 중심에 당당히 전시되어 있었다. 사실 나는 진품과 복원품 또는 복제품이 가진 가치의 차이를 크게 생각하지 않는 편이라 큐레이터가 진품이라고 강조해서 이야기하는 데도 별 감흥은 없었다. 이게 진품인지 복제품인지 보다는 얘 자체가 가진 역사적 과학적 가치가 더 중요하지. 그래도 나보다 먼저 들어갔던 자유관람객들께는 포인트가 되는 정보였나보다. 진짜라니까 한 번 더 눈여겨 보고 가셨다.

조선시대에 측우기는 상당히 많이 만들어져 각 지방 감영 등에 널리 보급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현재 남아있는 측우기는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공주감영 측우기가 유일하단다. 그래서 2020년에 국보로 승격되었다고. 역사적으로는 국가 표준 기상 관측 기구인 측우기를 증명하는 유일한 증거라는 가치와 더불어 서양보다 200년 정도 앞선 기구라는 가치가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항상 우리나라의 문화유산 가치를 설명할 때 서양보다 얼마나 앞섰는지 이야기를 하는게 좀 별로지만 굳이 그래야 하나 싶어서- 세계사가 서양 위주로 정립되는 과정에서 유럽문명은 우월하고 그 외의 문명은 다소 열등하다는 인식들이 아직도 여전히 기저에 깔려 있음을 생각하면 굳이 저 말을 붙이고 싶은 마음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 그러고보니 옛날에 체험학습 워크북 만든다고 기상청에 전화하고 공문 보내서 측우기 이미지 구매했던 기억이 있는데, 그 귀하신 몸이 이분이구나. 사진으로 보는 것도 절차가 필요했는데 실물을 이렇게 보다니, 왠지 감개무량하다.

 

어쨌든 역사적 가치도 충분하지만 과학적 가치도 대단하다고 했다. 측우기의 높이나 원통의 넓이도 그냥 나온게 아니란다. 3단으로 분리 가능한 저 통의 높이는 많은 계산과 연구 끝에 가장 효율적으로 빗물을 받을 수 있는 높이로 완성된 것이라 하고, 원통의 넓이도 더 넓으면 빗물이 너무 빨리 증발하여 빗물의 양을 정확히 측정할 수 없었을테고 원통 입구가 좁으면 빗물이 천천히 증발하여 실제 강수량과 맞지 않았을 거란다. 측우대도 그냥 높이 맞추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바닥에 떨어진 빗물이 튀어서 측우기 안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역할이 있었다고. 호오- 그냥 간단해 보이는 원통과 돌덩이에도 다 의미가 있었구나.

게다가 측우기의 과학적 논리와 설계는 현대 강수량 측정에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한다. 모양은 다르고 지금은 확실히 컴퓨터 등을 활용해서 측정이야 하지만 강수량 측정을 위한 조건을 맞춰주는 부분은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단다. 역시 세월이 아무리 변하고 아무리 대단한 기술이 개발되어도 근본이라는 것이 있긴 있다.

 

이게 얼마나 유용했냐 하면 조선 초기 세종 때 발명한 측우기는 조선시대 내내 거의 그대로 쓰였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몇백년 동안 그보다 더 나은 것을 만들 수도 없었고 만들 필요도 없었겠지, 아주 세부적인 변형이나 수정은 있었겠지만.

측우기와 측우대가 메인이었던 이 전시실의 한켠에는 당시 측우기가 설치되어 있던 위치를 표시한 지도가 있었는데, 봉수대보다도 훨씬 촘촘하고 체계적으로 전국 곳곳에 설치했었구나 싶었다. 진짜 많이 썼던 기구였구나.

짝꿍 측우기 없이 홀로 남은 몇 기의 측우대들에게도 애정의 눈길을 주고 난 뒤에 2층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밖의 큰 나무 두 그루가 보였는데 아마 설명 안 들었으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밖의 큰 나무 두 그루 중 하나는 벚꽃나무, 하나는 단풍나무였다. 뉴스에서 봄에는 벚꽃 개화시기, 가을에는 단풍 시기를 알려주는데 서울의 벚꽃 개화시기와 단풍 시기는 저 친구들이 기준이라고 했다. 벚꽃 나무는 한 가지에 3송이 이상 벚꽃이 전체 80% 이상이어야 서울에 벚꽃이 만개했다고 하고, 단풍도 이 친구의 잎이 80%쯤 물들어야 단풍 절정이라고 말한단다. 내가 방문했던 시기가 이제 막 봄꽃이 피려는구나~하는 시기였어서 벚꽃 만개까지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지만 저런 기준목이 있는줄은 처음 알았네. 그러고보니 박물관 주변으로 진달래 한 그루, 벚나무 한 그루 이런 식으로 기준목들이 있는 것 같았다. 기상청 직원들이 소중하게 돌보는 아이들이겠지, 중요하니까. 이 친구들은 이따가 돌아갈 때 다시 한 번 보기로 하고 2층으로 올라가자.

2층에는 근대 기상관측 기구들이 주로 전시되어 있었다. 잘 모르는 분야라서 그렇지 기상학 분야도 정말 다양하게 발전해왔구나. 근대 초기에 막 근대식 관측 기구들을 만들었던 그 시절에는 공기 중의 습도를 재는데 사람 머리카락을 뽑아서 썼다는 대목에서는 좀 웃기기도 했다. 인간은 어떻게든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지만 은연중에 근대적이고 과학적이며 논리적이라 여겨지는 서양에서도 과학적인 것 같지만 비과학적인 방법을 썼다니. 저 머리카락은 누구의 머리카락인가. 사람마다 모질이 다 다를건데 통계치의 의미가 있나.

30분간의 큐레이터 해설은 여기까지였다. 나머지는 다시 찬찬히 돌아보면서 여기와 시간의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된다.

 

그래서 다시 1층으로 내려가려고 통로 쪽 모퉁이를 돌았는데 2층에서 제일 재미있는 전시 섹션을 발견하고 말았다. 바로 이 장소, 이 건물에 대한 것이었다.

등산에 버금가는 높은 곳에 국립기상박물관이 위치한 이유는 바로 이곳에 서울기상관측소가 있기 때문인데 그 역사는 무려 1932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00년 가까이 서울의 날씨를 관측해 온 장소로 1970년대 80년대에도 개증축 등을 이어가며 실제로 사용한 관측소이자 내가 이해하기로는 지금도 관측소로서 기능하는 곳이라 의미가 깊었다. 그래서 옛날에는 우편실이 있었던 자리라던가, 박물관으로 꾸미는 과정에서 발굴된 70년대에만 팔았다던 해태 사이다병이라던가 하는 전시물들이 엄청 재미있었다.

가끔 생각하는데, 나는 60~80년대의 것들이 그리 먼 옛날이야기로 느껴지지 않는데 그건 내 10대 시절을 기준으로 한 세대 안에 들어가는 시기이기 떄문인 것 같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60년대 이야기는 진짜 먼먼 옛날이야기겠지, 거의 조선시대 급으로. 요즘 아이들의 감각으로는 임진왜란이나 6.25전쟁이나 시간의 거리감이 비슷한 것 같다고 느끼는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에게 저 해태 사이다병은 진짜 조선시대 백자 그릇이나 비슷하지 않을까 싶었다. 해태라는 회사가 있지도 않은 세대의 요즘 아이들에게 해태 사이다병이라니, 말도 안되는 얘기지.

그렇지만 나는 옛날 사람. 충분히 재밌다고.

 

스스로 옛날 사람임을 자각하며 1층으로 다시 내려와 구석구석 홀로 탐방에 다시 나섰다. 측우기도 다시 돌아보고, 지진계가 있었던 터와 예쁜 타일이 깔려 있어 신발 벗고 들어가서 봐야 했던 영상실에서 기상청 직원들의 vlog 영상도 꼼꼼히 봤다. 이곳이 처음 생긴게 1932년이라면 일제강점기니까 일본인들의 의식에는 지진계가 있는게 당연했을테니 지진계를 당연히 두었겠지만 우리나라 지형 특성상 지진계가 서울에 있는 것은 좀 의미가 약했겠지. 서울에서 지진계를 놓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의미는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얘가 관측의 기능을 한 적은 별로 없었겠다. 그래도 하나쯤은 필요했겠지, 혹시나라도 대비를 하는 게 좋으니까.

영상실은 신발 벗고 빈백에 앉아 있는 느낌이 편안하고 좋았다. 기상청 직원들 vlog나 쇼미더머니 컨셉의 영상은 약간 오글했지만.

영상까지 야무지게 다 즐기고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1층 한쪽의 휴게공간 겸 도서관 공간이었다. 마침 방문한 날이 세계기상의 날이었던 관계로 이곳에 설치된 패널에 관람 감상 남기고 인증샷 찍으면 입구 데스크에서 선물을 준다고 해서 짧은 감상 남기고 인증샷도 찍었지만 나오면서 굳이 선물까지 챙겨가냐 싶어서 그냥 나왔다. 뜯어 만드는 거 좋아하지만 아가야들에게 양보해야지. 대신 기상 관련 도서들을 열람할 수 있게 해 둔 열람용 도서 중에 왕실의 천지제사라는 책은 사진 찍어왔다. 한번 사서 읽어보려고-그런데 아직 까지 안 샀다, 사야지-

 

국립기상박물관은 실제 관측소 건물을 박물관으로 재단장한 건물이라 규모가 크지도 않고, 효율적인 기상 관측을 위해 높은 곳에 따로 위치하고 있는 탓에 접근성도 썩 좋은 편은 아니지만 주제가 기상으로 딱 정해져 있어서 전시 자체가 좀 밀도 있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물론 네이버 예약이 더 번거롭고 그냥 시간별로 현장에서 모아서 해설을 하는게 더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건 하다보면 관람객이나 직원들에게 더 편한 쪽으로 변하기 마련이니 그러려니 하기로.

 

결국 박물관도 건물의 규모나 전시 기법의 최신 트렌드나 이런 것보다 보여주고자 하는 콘텐츠가 무엇인지가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날씨가 좀 선선해져서 단풍이 지기 시작할 때쯤 서울의 단풍시기를 진짜 알 수 있는지 그때도 한 번 더 가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올라갈 때와 반대로 무한 내리막길을 걸어내려왔다는 323일의 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