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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의 일본 여행은 결국 역사 여행으로 – 일본 사가현 소도시 역사탐방 (4) 사가성 혼마루 역사관
oneum_rong_rei 2024. 4. 20. 23:09이번 여행의 핵심 목적지 두 곳을 모두 클리어했지만 그렇다고 늘어지는 것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사가역으로 돌아와서 사가역 남쪽 출구로 나와 잠깐 숨을 돌린 다음 곧바로 또 파워워킹에 나섰다. 목적지는 사가성 혼마루 역사관. 초초거대문자 J인 나는 여행 일정을 착착 테트리스를 해 놓고도 혹시나 일정이 일그러질 경우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을 경우를 대비해 서브에 서서브 일정용 장소를 찾아놓는 편인데 이제 가려고 하는 사가성 혼마루 역사관이 바로 그 서브 일정용 장소였다. 원래 처음 일정은 사가는 베이스캠프이기만 하고 돌아볼 겨를이 없었는데, 이건 이거대로 아쉬워서 일정 테트리스를 다시 하면서 넣은 장소가 사가성 혼마루 역사관이었다.
그런데, 분명히 어제 구글 맵이한테 물어봤을 때는 숙소에서 걸어서 25분 걸린댔는데- 그래서 25분이면 걸을만하지! 했었는데, 왜 오늘 사가역에서 찍으니 도보 40분이 나오는 거냐. 사가역에서 숙소가 도보 3분 컷인데? 그러나 원체 차멀미가 있어서 버스 타는 걸 선호하지 않는지라 40분을 천천히 걸어가 보기로 했다. 생각만큼 천천히는 되지 않았지만.
사가역에서 사가성 혼마루 역사관까지는 주작대로처럼 쭉 뻗은 길을 그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건 헤맬 수가 없다. 중간 중간 잘 가는 중인지 불안해서 맵을 계속 확인하긴 했지만 길이 어렵지 않은데다 길 양쪽에 늘어선 상점들 보는 재미도 있었다. 특히 눈길을 끌었던 것이 버스정류장 벤치나 공공용지 벤치 등에 실제 앉아 있는 것처럼 조형된 여러 기의 사람 형태의 브론즈상들이었다. 이 조형물들은 옛 사가성의 해자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등장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일본 근대사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고 판단되는 사가현 출신 인물들이었다. 사가현 출신의 근대 건축가라던지, 일본 최초의 여성 화학박사라던지 하는 인물들이 마치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이 앉아 있으니 꽤 괜찮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일본 근대사에 대해서도 잘 모르는데 사가현의 근대사는 더더욱 알 리가 만무하지만 그래도 이 장면이 머릿속 어딘가에 남는 효과가 있다면 충분히 의미가 있겠다 싶었다. 지자체에서 설치한 이 정도 조형물은 현의 역사를 기억하면서도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고, 통행인들에게 불편을 크게 끼치지 않는 프로젝트인 것 같았다.
그렇게 한 30분쯤 걷다 보니 사가 지역방송국 건물이 나오고 그 옆으로 꽤 큰 강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오호라, 이제 거의 다 왔군. 이것은 해자다. 한강을 자연 해자로 썼던 풍납토성 인근만 뺑뺑 돌며 살아온 짬바와 다수의 오사카성 방문 경험이 결합되어 한눈에 알아봤다. 곧 나타나겠군, 사가성.
해자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니 사가시 체육관과 도서관 등 공공시설이 있었고 다시 작은 개울이 나왔다. 해자를 이중으로 썼구나. 되게 중요한 성이었나보다. 생각하는 찰나 시야에 성벽이 들어왔다. 진짜 40분을 풀로 채워서 걸었네.
사가성은 어제 봤던 가라쓰성처럼 높다랗게 올려져 있지 않고 그냥 성벽만 있는 느낌이었다. 구글맵에도 사가성터라고 되어 있는 것을 보니 이전에 대부분 훼손된 것을 이정도 선으로 재현한 모양이었다. 성벽 밖에는 인근 주민이 강아지 산책을 시키고 있었는데 새까만 소형견이 푸른 잔디 위에서 깡충깡충 뛰는 모습에 40분 걸어온 피곤이 사르르 녹는 것 같았다. 오전의 요시노가리 유적부터 이어서 이미 만삼천보를 넘은 시점이라 몸에 피로가 쌓이는 시점에 짠 하고 나타난 귀여운 남의 강아지님. 집에서 날 기다리고 있을 우리 고양이님 잘 계시는지 홈캠 한 번 확인해 보고 다시 힘을 내 성벽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나는 눈에 보이는 문으로 들어갔는데 역사관 건물의 뒤통수로 들어간 모양이었다. 정문 놔두고 뒷문에 끌리는 것도 능력이다, 정말. 그래서 건물을 빙 돌아 앞문을 찾아갔더니 왠 철포들이 가득 줄지어 있었다. 성벽 밖은 평일 한 낮 도심의 평화로움 그 자체인데 갑자기 철포라니, 쌩뚱맞은 느낌이긴 했지만 성이라서 그런가? 라며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혼마루를 복원한 건물이라 전체에 다다미가 깔려 있어서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했다. 여행하면서 신발 벗는 것은 꽤나 귀찮은 일이지만 이게 또 하루종일 신발 꽉 조이고 걸어다니다가 벗으면 시원하고 편안한 부분이 있어서 뭔가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완전 몰랐지만 일정 테트리스를 이렇게 한 나, 잘했다- 짜식.
사가성 혼마루 역사관은 터만 남았던 사가성 터에 혼마루 건물만 복원하여 전시관으로 활용하는 공간. 일본 근대의 성 중에서 처음으로 복원했다는 의미도 있다고 한다. 바닥에 깔린 다다미가 꽤 두꺼운지 아주 푹신푹신해서 바닥을 밟는 느낌도 괜찮았다. 그런데 이렇게 폭신한 다다미를 계속 걷다 보니까 일본 사람들이 왜 바닥을 쓸 듯이 걸어다니는지 약간 이해할 수 있었다. 평소대로 걸으니까 나 혼자만 엄청 쿵쾅거리면서, 뒷꿈치로 바닥을 막 쾅쾅 찍으면서 다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에. 안그래도 덩치도 한 덩치하는데 킹콩처럼 활보하는 느낌이었달까. 그리고 또 동선이 막 이리 왔다 다시 저리 갔다 하는 동선이라서 만일에 내가 그 옛날 닌자나 자객이었으면 길을 잃어서 타겟을 만나지도 못했겠다 싶었다. 그러라고 이렇게 동선을 어렵게 해 둔 거겠지. 건축적 함정에 딱 맞는 인간형, 그게 바로 나.
역사관 내부의 전반부는 당시 사가성의 생활상을 재현한 공간으로, 후반부는 근대 사가성과 사가현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전시한 파트로 구성되어 있었다. 혼마루는 대체로 성주 접견실로 쓰였던 모양인데 접견 대기실이 많아서 실제 접견까지 단계가 많은가 싶었다. 자세히 패널을 읽고 싶었지만 이미 공간지각력이 안드로메다로 가 버린 상황이라 쿨하게 패스. 이쯤 되니까 내가 보고 따라온 화살표가 이건지 저건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잠시 우왕좌왕 기웃대다가 나가는 화살표를 찾아 따라가니 전시실 영역이 나타났다. 흐흐- 이제야 안심이 좀 된다. 여기가 후반부라는 뜻이니까.
전시 내용은 일본 근대 역사에서 사가성이 가진 의미를 조명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사가성을 지은 초대 성주 나베시마 나오마사는 전국에서 뛰어난 과학자들을 불러 모아 연구소를 만들었다고 한다. 나가사키에서 유명했던 난학자, 의사를 비롯해서 이름난 과학기술자가 있다면 초빙해 일종의 싱크탱크를 운영했단다. 그래서 사가현은 일본 근대 과학기술 발전에 지대한 역할을 했다. 일본에서 종두법을 제일 처음으로 시행한 것도 사가번이었고 철포, 증기선 등을 처음으로 만든 것도 사가번이라고. 한 사람이 의지로 끌어당긴 사가의 과학기술 발전은 결국 일본의 근대 기술 발전으로 이어졌다.
사실 일본 근대의 발전상들을 접할 때마다 마냥 좋게 볼 수는 없는데, 그럼에도 어떠한 한 시대를 획기적으로 밀고 끌고 나가려면 리더가 철학을 가지고 자기가 선택한 사람들을 끝까지 믿어 지지하는 것이 필요하겠구나라는 생각은 들었다.
신발을 벗고 서늘한 다다미를 밟고 다닌 덕분에 발이 좀 편안해졌다. 이제 또 다시 40분을 걸어가야 한다는 걸 생각하면 아주 몹시 딱 맞는 일정이었다. 전체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있어서 몸의 열기도 식히고 발도 좀 쉬는 느낌이었다. 이제 다시 사가역으로 돌아가야지.
나갈 때에야 정문을 발견하고 나갔는데 밖에 나갔더니 조금 높게 쌓은 치성같은 부분이 보였다. 안내문을 읽어보니 천수각이 있었던 자리, 천수대라고 한다. 사실 어제 가라쓰성에서도 생각했지만, 천수각을 하늘 높이 쌓아서 망루 역할을 하면서 권위와 권력의 상징성을 가지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 한데, 방어 측면에서 효과적이었을까? 저렇게 대놓고 존재감을 드러내면 표적이 되기 쉬운 거 아닌가? 높아도 너무 높아서 괜찮은가? 일본의 성은 기본 개념부터가 좀 다른 느낌이다. 나중에 찾아봤더니 사가성은 1874년 메이지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일으킨 ‘사가의 난’으로 완전히 무너졌다고 한다. 선구적인 과학기술 개발을 비롯하여 학문적 수준이 높았던 사가번이었지만 철포 등 무기를 완성한 다음에는 막부에 이 기술을 숨기느라 폐쇄적으로 굴었고, 메이지유신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고. 아마 이 부분이 사가번의 잘못된 선택이었겠지. 결국 메이지 정부에게도 반골로 찍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면서 정부에 반감이 높아진 사가의 사족(士族) 일부가 반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이 반란은 전쟁이라 불릴 정도로 격렬했던 것 같다. 정부군이 겨우 반란을 진압했다고 하는데 이 과정에서 사가성은 사라졌다는 것이다. 나중에 혼마루 도면이 발견되어 도면을 바탕으로 복원한 것이 내가 실컷 휘젓고 다닌 혼마루 역사관이고.
다시 사가역으로 돌아오는 길. 사가번주 나베시마 나오마사 동상을 보고 뒤로 돌아섰는데 방송국 전파탑이 두 개다. 아까 올 때 사가방송국은 봤고, 저건 뭐지? 했더니 NHK 사가지국 건물인 것 같았다. 확실히 상당히 중요한 도시인가보다, 사가.
다시 40분을 걷는데 그래도 아까 왔던 길 다시 돌아가는 거라고 좀 여유가 생긴다. 도심 풍경인데도 고즈넉함이 있다. 고층빌딩도 많이 없고, 낮고 잔잔한 느낌. 이상하게 뾰족하게 올라가는 건물보다는 옆으로 덩치가 있는 건물들이 더 많은 느낌이랄까. 어느 정도 인프라가 있는 지방소도시에 사는 것이 로망인 1인으로서 괜찮은 일자리만 있다면 이런 데서 살아도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것도 어렸을 때 했어야 가능하지, 이제는 괜찮은 일자리의 기준이 상당히 높아졌을 테니까. 게다가 괜찮은 일자리가 많다면 이 도시가 이렇게 고즈넉하지 않겠지. 이래뵈도 이상과 현실의 구분이 명확한 편. 아무것도 안 하고도 이런데서 살 수 있을 만큼 돈이 많다면 나는 아마 유럽 구석구석을 여행하고, 우리나라의 지방 소도시에서 소소하게 살겠지. 남의 나라에서 떠올려 보는 로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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