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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부터 역사를 좋아했고, 박물관에 넣어놓으면 하루 종일이라도 혼자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신나게 돌아다녔으며, 그래서 결국 돈 안되고 졸업하고 나서도 할 거 없으니 가지 말라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굳이 재미있다는 이유로 사학 전공을 선택한 나지만 몹시도 쥐약인 시대가 있다. 바로 광복 이후의 우리나라 현대사.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은데, 하나는 너무 복잡하고 또 너무 폭력적이라서 공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심리적 트라우마라고 생각한다. 역사공부에 웬 심리적 트라우마까지 가냐 싶겠지만 – 스스로도 너무 오버인가 싶을 때도 있다 – 초등 4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 광주 출신이셔서 5월 한 달 동안 교실 뒤 게시판에는 5.18 관련 기사와 보도사진이 적나라하게 붙어 있었다. 그래도 그 나잇대가 아직은 감성이 말랑말랑하고 할 때라 그 사진들이 너무 무섭고 충격적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학습된 공포감이 굉장히 오래 의식과 무의식 사이 어디쯤에 자리하고 있었는지, 지금까지도 군부 쿠데타나 군사독재 이런 이야기에는 거부감이 상당하다. 극T지만 그래도 감정동화까지는 가능한 인간으로써 공포와 분노 같은 감정에 이미 11살 무렵부터 동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여튼 구구절절한 변명의 이유는 그래서 내가 근현대 관련 유적지 가는 걸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를 수도, 안 갈 수도 없는 곳이 근현대 유적이다. 왜냐하면 지금 시대와 완전히 맞닿아 있어서 남아있는 흔적도 많고 또 그 흐름이 지금까지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유적들을 유적으로 바라보면 각 잡고 공부하는게 아니라서 그런지 그래도 머릿속에 남는 것도 생긴다. 또 근현대 건물들이 나름대로 미감이 있는 경우들이 있어서 심리적 거부감이 좀 희석되기도 하고.
그동안 그래도 이런 식으로 여러 번 방문하여 거부감을 줄인 곳들은 대체로 근대까지, 그러니까 일제강점기까지인데 이건 다 개항장이 있던 도시들에 남아있는 일제 관련 건물이나 유적들을 때려부수지 않고 남겨서 전시관들로 활용한 덕분이다. 대표적인 곳이 인천 근대거리에 남아있는 일제 당시 일본제1은행, 18은행, 58은행 건물들이랑 대구 식산은행 건물이랑 목포에 동척건물이랑 그리고 부산에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 등이다.
그런데 최근에 아주 오랜만에 부산에 갈 기회가 있어서 내 기억 속에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바뀌어 있는 동양척식주식회사 건물을 가 보게 되었다. 오랜만에 가 보면 또 뭔가 바뀌는 게 있기 마련이라 약간의 기대감이 있었지만 변화는 내 생각보다 훨씬 커서 여기 어디야?를 육성으로 내뱉었다.
나는 부산근대역사관으로 알고 있었던 건물은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이 되어 있었다.
응? 언제? 왜? 하하-
그럼 본관은 어디야? 했더니 별관에서 작은 길을 하나 건너면 있었다. 한국은행 그러니까 조선은행 부산지점이었던 건물이.
뭔가 내 기억 속에 부산근대역사관과 용두산타워가 이렇게 가깝지 않았던 것 같고, 중앙성당이라는 주교좌성당도 본 적이 없는데 – 내가 주교좌성당을 못 보고 지나쳤을 리가 없고 봤는데 까먹었을 리도 없는데 – 왜 여기 다 모여있지하는 물음표가 계속 머릿속을 퐁퐁 떠다녔지만 워낙에 지리나 공간 지각력이 부족한 것을 알기에 내가 몰랐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일단 이 부분은 접어두기로.
하지만 약간 서운해졌다. 예전에는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건물이 단독으로 전시관이라 메인 주인공이었는데 지금은 본관의 부속건물처럼 되어 있으니까 괜히 내가 서운하잖아. 대신에 부산근현대역사관 본관 건물의 전시가 잘 되어 있어서 본관 건너가자마자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별관은 부산시민들을 위한 휴게 공간, 주로 독서를 할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져 있어서 내 기억 속의 동척 건물은 완전히 사라졌다. 나는 예전부터 이 ‘척식’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는 게 어려웠다. ‘척’과 ‘식’이 무슨 뜻인지는 교과서에서도 나오지 않았고 그저 동인도회사를 모방하여 만든 수탈회사라고만 등장하기 때문에 따로 찾지 않으면 그냥 드르륵 넘어가게 된다. 그런데 이 ‘척식’만 뜻을 풀어줘도 이 회사가 뭐 하는 회사였는지 바로 이해할 수 있다. 개척의 척과 식민의 식. 즉, 개척해서 식민화하는 회사 또는 식민지를 개척하는 회사라는 거다. 주로 무엇을 개척하느냐, 전형적인 개척의 대상인 땅. 여기까지 연결하니 이 회사가 일제의 본격적인 식민지배 전부터 토지조사사업을 주도한 것이 맥락상 이해가 된다. 개항을 하고 일본인들이 많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이들을 필두로 농사짓는 땅을 야금야금 수탈하기 시작했던 그 회사. 의열단의 무장 투쟁의 대상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다. 건물을 지을 때부터 무장투쟁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식민지에서 경제 수탈을 자행하는 곳이었던 만큼 예전에 봤을 때도 참 튼튼하게 지었다 싶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 보니까 확실히 건물이 뭔가 다부지게 생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본관의 전시를 관람해 볼 차례다.
1층은 카페로 활용되고 있었고, 조선은행&한국은행 시절 금고였던 지하 공간은 현대미술 작품의 전시가 한창이었다. 다량의 돈과 금괴 등을 날랐을 엘리베이터에 괜히 손을 한 번 대 보았다. 믿지도 않으면서 워낙에 없는 돈복이 조금이라도 오려나 싶어서. 뭐 굳이 안 할 필요도 없잖아.
그리고 이제 본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서 3층으로 향했다. 전시의 시작은 초량왜관 시절부터였다. 부산의 역사가 참 재미있는 것이 임진왜란 시작 즈음에 항상 나오는 문구가 있다. 그때는 부산이 동래에 딸린 작은 마을이었다는 것. 지금은 우리나라 제 2의 도시로 손꼽히는 거대 해안도시이지만 조선시대의 부산은 동래부에 속한 작은 진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기부터 아니 그 이전 고려 때부터 왜구라 불렀던 일본 해적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조선은 당근과 채찍 전술로 대마도 정벌로 왜구들의 전진기지를 없애기도 했고 또 부산 쪽에 왜관을 허용하여 이들이 합법적인 범주 내에서 무역을 통해 살길을 열어주기도 했다. 그래도 안되면 조선은 백성들이 섬에 살지 못하게 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바보같은 생각이냐 싶기도 하지만 또 오죽하면 그랬을까 싶기도 하다.
어쨌든 조선에서는 작은 마을이었던 부산은 왜관이 열려있었던 관계로 일본쪽에서는 중요한 지역이었나보다. 왜관을 그린 그림이 여러 점 전시되어 있는 것을 보니. 왜관 그림들을 살펴보다가 문득 예전에 스치듯이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대마도 같은 곳에 사는 왜인들은 섬 안에서 식량이 해결이 되지 않아서 조선과의 교역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고. 그렇다면 왜관을 중요하게 여길 수밖에 없었겠다.
계속 작은 동네였던 부산의 규모가 커진 것은 한국전쟁으로 임시수도가 되고 피난민들이 모이게 되면서부터였다. 이 섹션에도 상당히 인상적인 패널이 있었는데, 바로 이 임시수도 시절에 서울에 있던 각종 학교들이 내려와 옹기종기 다시 문을 열었던 위치를 표시한 지도였다. 출신 대학교 이름을 부산에서 보니 왠지 반가웠다. 대학은 다니기만 했으면서 그래도 자그마한 애정은 있나보다하고 웃으면서 걸음을 옮기려는데 출신 고등학교 이름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세상에나- 우리 고등학교도 부산 시절이 있었어? 고등학교 이름 자체를 본 지도 한참인데 그걸 부산에서 보다니.
참... 우리나라는 글자로 습득하는 지식에 대한 열망이 엄청나구나 싶었다. 사실 전쟁통이야말로 책 붙들고 앉아 있을 때가 아닌데, 이때에도 대학이며 고등학교며 서울에서부터 바리바리 다 내려와서 이 좁은 부산에 다닥다닥 붙어 살면서도 학교를 열고 공부를 지속했다니.
대체 무엇이 이렇게까지 강력한 교육열을 만들어 냈을까. 나도 책에서, 활자 통해서 지식 습득하는 것을 좋아하지만 만일 전쟁 중이었다면 과연 공부를 했을까 싶은데. 너무 오랫동안 사농공상의 사상 하에 있었기도 했고, 또 실제로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위를 얻어온 역사가 하도 길어서 그런가. 그렇다기에는 전쟁 끝나면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공부를 시키겠다, 하겠다는 저 때의 마인드가 선뜻 이해가 되지는 않는 지점이 있었다. 물론 대단하다는 마음이 더 컸지만.
지금에 와서는 저렇게 책만 파고 지식만 쌓고서 높은 자리에 올라간 이들이 벌여놓은 행태들이 화딱지가 나지만 저 때에 저렇게라도 미친 듯이 공부하고 습득하지 않았으면 우리나라의 지금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과정에서 어느 한 계층이나 어느 한 지방이나 여하튼 어떤 한 부분을 희생하라고 밀어놓고 버려두고 가지 않는 노력을 했어야 마땅했지. 우리나라 사람들은 목표 지향적인 성향이 강해서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나 미래를 위한 투자 같은 말로 빠른 발전에서 오는 그늘을 포장해 온 것이 아닐까. 하지만 그것도 요즘 세대에게는 별로 먹히지 않는 옛날 얘기. 그러니까 이제는 옛날에 했던 걸 다시 할 수 있는 때도 아니고 한다고 그때처럼 되는 때도 아니다. 이런건 역사를 조금이라도 세밀히 살피면 알 수 있는데.
복잡한 기분으로 계속 전시를 둘러보다보니 산복도로 모형을 만났다. 전시 중 이런 디오라마나 미니어처 모형 같은 것은 어떤 것이든 관람자의 시선을 붙잡는다. 눈으로 봤을 때 딱 직관적으로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산복도로 모형도 그랬는데, 작은 언덕빼기를 지그재그로 지나는 도로와 그 사이에 집들과 각종 상점들을 비롯한 편의 시설까지 옹기종기 모여있는 모습이 아주 직관적이었다.
부산은 지형 자체가 바닷가에 면해있는 언덕이라 솥뚜껑 부 자를 써서 부산이라고 했다는 동네라 평지가 널찍한 곳은 아니다. 그런 곳에 거짓말 조금 보태서 한반도 전체 인구가 모여 살았다고 해도 될 정도이니 얼마나 다닥다닥 모여 살았을까. 그러니 사람들은 점차 높은 곳까지 점령하며 집을 짓고 마을을 형성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부산의 산토리니라는 별명까지 붙었던 감천문화마을 같은 마을들이 만들어졌고, 이 높은 마을을 다니기 위해 산복도로가 만들어졌다. 거의 평생을 강가 평지에서만 주로 살아온 사람으로서 이런 산복도로는 그저 걷기 힘든 산길 같은 느낌이기는 해도 페스츄리처럼 겹겹이 앉은 집들과 그 사이를 연결한 산복도로의 역할이 얼마나 지대했을지라고 감탄하면서도 무빙워크나 에스컬레이터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산근현대역사관 전시를 둘러보면서 들었던 생각은, 전시의 색채가 섹션마다 완전히 바뀌는 느낌이 든다는 거였다. 전시 구성 자체는 일관성을 어느 정도 가지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래도 색깔이 달라지는 것 같다고 느낀 것은 그만큼 부산이 빠르게 바뀌어 왔기 때문이 아닐까. 확실히 부산은 우리나라의 다른 도시들에 비하면 역사를 껑충껑충 뛰어가며 발전한 느낌이 있다. 임진왜란 때까지만 해도 왜구의 괴롭힘을 당하는 작은 바닷가 마을이었고, 작은 방어진이 있던 곳이었는데 개항하고서, 6.25 전쟁을 겪으면서, 경부고속도로가 생기고 같은 큰 분기점마다 한 번에 빵빵 자라난 느낌. 역사관만 해도 몇 년 만에 확 바뀌어서 나를 놀라게 했고.
언젠가 부산을 두고 ‘젊은 도시’라고 표현한다고 들은 적이 있다. 도시의 역사가 젊고 발전 속도가 에너제틱해서 그렇다는 설명까지 덧붙여 들었던 것 같은데 근현대 역사의 전개만 봐도 약간 그런 느낌이었다. 나와는 전혀 연고가 없는 도시이지만 앞으로도 청년같이 에너제틱하게,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는 그런 도시이기를 바라보며 역사관을 나섰다.
아직까지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도 이 시기의 역사가 흥미진진해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 열심히 들여다보기로 스스로 다짐도 해 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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