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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동궁의 화룡점정, 계조당

 

내가 어렸을 적 경복궁은 근정전 같은 몇몇의 핵심 건물을 제외하고는 온통 잔디밭투성이였다. 잔디밭마다 돌로 네모지게 구획을 지어놔서 칸마다 다른 꽃을 심으려고 이렇게 해 놓았나 싶을 정도였다. 박물관만큼이나 궁궐, 왕릉 같은 유적지를 가는 것을 좋아했던 어린 시절의 취향은 한결같이 변함이 없었기에 지금까지 셀 수도 없이 경복궁을 방문하는 중이다. 물론 일 떄문에 가는 것도 있긴 하지만 경복궁은 계속해서 가도 재밌는 이유가 갈 때마다 뭐가 하나씩 새로 생기기 때문이다.

 

과장 조금 보태면 한강 둔치 유원지처럼 풀밭이 넓게 펼쳐져 있던 시절의 경복궁을 기억하는 나는 갈 때마다 그 빈칸들에 건물이 하나씩 들어서고, 회랑이 연결되고 잘못 놓인 것들이 자리를 찾아가고 그래서 점점 더 조선의 으뜸궁궐의 모습을 차근차근 찾아가는 것을 목격하는 것이 재미있다.

 

그만큼 경복궁은 꾸준히 지속적으로 발굴 조사와 복원이 진행되는 곳인데, 이번에 동궁 권역의 핵심 건물이라 할 수 있는 계조당을 복원하여 공개한다고 해서 득달같이 다녀와 보았다.

동궁은 궁의 주인인 왕의 건물 기준으로 동쪽, 그러니까 궁궐 전체 배치에서 남북 중심축을 기준으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동궁이라고 불리고 다음 왕위 계승자인 왕세자가 살았다. 새로운 태양이 동쪽에서 뜨듯이 다음번 태양이 될 세자의 공간을 동쪽에 둠으로써 차기 왕이 누구인지 알리는 것은 물론 그 지위를 공고히 하는 효과도 얻었던 것이다.

 

경복궁의 동궁 영역에는 이미 자선당과 비현각이라는 건물이 있었지만 이번에 계조당이 복원되면서 바야흐로 동궁 영역의 마지막 퍼즐이 맞춰진, 완성의 느낌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랄까. 처음엔 조계당으로 알고 검색을 해봤지만 나올 리가. 요즘 검색 엔진의 성능이 좋아져서 조계당으로 검색해도 계조당이 나와주긴 했지만 정보를 확인하고 인터넷 창을 닫고 나서야 깨달았다, 내가 이름을 헷갈렸다는 것을. 하하- 혼자였지만 이게 이렇게까지 부끄러울 줄이야. 덕분에 계조당을 확실하게 인지하긴 했지만.

계조당은 이 동궁 영역의 핵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는 왕세자의 업무 공간이다. 특히 위대한 성군 세종의 아들로서 세자 생활을 한 30년쯤 한 문종이 이 계조당에서 업무를 보았다고 한다. 멀끔하게 잘 지어진 새 계조당 안에서는 왕세자의 일상이라는 주제로 전시가 진행되고 있었다.

 

신발을 벗는 것이 귀찮기는 하지만 그래도 발바닥에 닿는 마루의 느낌이 뭔가 시원하다. 그리고 열린 창을 통해서 바라보는 바깥 그림이 참 매력이다. 아직 뽀얀 기둥과 시간이 내려앉지 않은 기와지만 창호지 창문 너머로 보이는 그림이 그냥 순간 훅하고 눈에 들어왔다.

계조당 내부 전시는 계조당을 계조당으로 사용했던 두 왕세자 문종과 순종을 주인공으로 하여 진행되고 있었다.

원래는 궐 밖에 있었던 동궁을 세종 때 경복궁 권역 안으로 들여왔고, 문종이 여기에서 관료들의 조하를 받으며 업무를 보았다고 한다. 이후 계조당은 중종 때 중수가 되었지만 임진왜란 때 경복궁 전체가 소실되면서 사라졌다가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경복궁 중건 때 다시 지어져 순종이 여기에서 동궁 시절을 보냈다고.

그래서 내부에는 순종의 왕세자 교명과 죽책, 옥인 복제품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유리 전시장 안에 들어가 있지 않고 오픈되어 있어서 나도 모르게 만질 뻔 했지만 다행히 이성의 끈을 붙잡았다. 아무리 복제품이라도 만지는 건 안돼지!

여튼 순종의 왕세자 교명은 비단으로 되어 있어서 인상적이었다. 자수는 아닌 것 같은데... 뭔가 천을 만들 때 글씨까지 같이 짠 느낌이라고 해야 되나- 죽책이나 옥인은 다른 박물관 같은데서도 본 적 있어서 익숙했는데 천으로 짠 고명은 또 처음인가 싶어서 좀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이 고명과 죽책, 옥인은 왕세자 책봉식 때 각각 가마에 실려서 장엄한 행렬을 한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왕세자 책봉식은 굉장히 성대했어야 했겠다. 다음 왕위를 이를 사람을 공표하는 행사이니 순위가 몇 번째이든 왕위 계승 후보 리스트에 올라있던 모든 사람들을 압도해야 할 필요가 있었을테니.

 

이 행렬의 장엄함을 책임지는 것이 바로 의장기 등 상징물들이었을텐데, 계조당 전시에는 왕세자만 쓸 수 있었다는 기린기와 백택기, 공작이 새겨진 부채인 작선 등 의장 상징물도 전시되어 있어서 눈길을 끌었다.

보자마자 해치네? 라고 했던 아이는 사실 백택이라는 상상 속의 신수였다. 하지만 뭔가 능력치나 기능이 해치랑 비슷한 것 같기는 한 것이, 백택은 사람의 말을 이해하고 만물을 관통하는 지식을 가지고 있는 짐승이라고 한다. 아닌가, 비슷하다고 뭉뚱그릴 수는 없으려나.

후루룩 전시를 돌아보고 나오니 그제야 해설 현장 신청 배너가 보였다. 해설을 9/18까지만 한다고 쓰여져 있길래 혹시나 다음에 해설을 재개하려나 싶어서 스태프분께 물어봤더니 한동안 토, 일에는 한국어 2(10, 2), 영어 1(12)를 진행한다고 관심있으면 오후 2시 예약 가능하단다. 계조당을 이미 봤는데 해설을 또 듣는게 괜찮을까 싶었지만 오늘이 아니면 다시는 해설 듣지 않을 것 같아서 나름 과감하게 2시 해설을 예약했다.

 

궁능유적본부 소속 해설사님의 해설은 동궁 권역 전체에 대한 해설이라서 현재 동궁 영역에 복원되어 있는 자선당, 비현각 그리고 계조당까지 약 30여분 동안 이어졌다.

자선당은 동궁 권역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건물인데, 가로축이 왕의 편전인 사정전과 동일 선상에 위치하여 건물의 위치만으로도 왕세자의 권위와 예비 1인자로서의 역할을 알려준다고. 1915년 조선물산공진회를 이유로 철거되어 일본에 갔다가 관동대지진으로 소실되고 불에 탄 기단석만 남은 것을 1993년에 확인해 반환한 후 1999년에 복원 건축할 때 사용하려 했지만 너무 상해서 활용하지 못하고 완전히 새로 복원했다고 한다. 원래의 자선당 기단석은 건청궁 앞쪽에 전시 아닌 전시를 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고보니 생각이 났다. 예전 언젠가 건청궁 앞으로 갔을 때 향원정 인근에 불에 탄 돌덩이들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게 자선당 기단석들이었구나.

해설사의 설명에 의하면 자선당은 왕세자가 생활을 하기도 하고 서연을 하기도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아마 편전 겸 침전의 역할을 했던 것 같다.

자선당 다음으로 비현각을 보러 갔다. 비현각은 실록에 자주 등장하는 전각은 아니라서 다소 정보가 부족한 편인데 그래도 자선당과 거의 같은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자선당이 가로 7칸인 것에 비해 비현각은 가로 6칸이라서 자선당보다는 1칸 정도 작지만 눈으로 보기에 보임새는 비슷해 보였다. 보통 가로로 짝수 칸을 쓰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비현각은 왜 6칸일까 궁금했지만 묻지 않았다. 보기엔 자선당의 동쪽 한 칸을 안 지은 것 같은 모양새였고, 나중에 찾아보니 툇마루를 내느라 1칸을 줄인 것으로 추측된다고 하는데, 썩 이해가 되지는 않은 상태.

비현각 현판의 자가 굉장히 특이하게 쓰여져 있어서 눈길이 갔다. 비현각의 비현<시경>의 매상비현이라는 구절에서 따왔다고 하는데 매상비현은 해가 뜨기 직전 가장 어두울 때 덕을 크게 밝히다 라는 뜻이라고 한다. 참으로 세자에게 어울리는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가 크다라는 뜻이라는데 삼국지의 조조 아들 조비가 이 비자를 쓴다는 얘기를 덧붙여주셨다.

하지만 정작 비현각은 왕의 별당 같은 역할로 많이 쓰였다고 한다. 그나마도 기록에 몇 번 등장하지도 않고.

 

그리고 다시 계조당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직 남은 빈 터를 만났다. 계조당과 비현각 사이에 세자익위사와 시강원 건물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었다고 한다. 언젠가는 이 건물들도 복원이 되겠지. 그러고 보면 조선의 궁궐들은 널찍하니 공터가 많았기보다는 크고 작은 건물과 그들을 둘러싼 회랑과 큰 문, 작은 문들로 아주 빽빽했었겠다는 실감이 들었다.

 

, 그리고 계조당은 현재 백골집 상태인데 복원에 사용된 목재들의 건조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단청도 칠할 계획이라고 한다. 사실 나는 나무 본연의 색이 그대로 드러난 지금의 모습도 좋은데 내내 단청이 칠해진 멋들어진 건물만 보다가 단청 안 칠해진 건물 보니까 영 어색하다는 한 어르신의 말씀을 들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리고 궁궐 건물이니까 단청이 올라간 게 맞기도 하겠고.

 

단청도 칠해지고 부속 건물들도 더 복원되어 미로같은 경복궁에서 길치력을 맘껏 발휘하여 헤매는 날이 오기를 바라보며.